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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소개

한국과 이라크 양국 관계 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라크의 정치

1968년 쿠데타로 독특한 이슬람 사회주의 노선을 따르는 바트당이 집권한 이래 사실상 1당독재가 유지되고 있다. 국가최고기관은 혁명평의회(RCC)로서 9인으로 구성되며, 국가원수인 대통령은 혁명평의회에서 선출되는데 당서기장, 혁명평의회 의장, 군 총사령관을 겸임한다. 임기는 무기한이다.

79년 7월 16일 A.H.바크르 대통령이 사임하고, 후임에 사담 후세인이 선출되었다. 왕정 붕괴 이후 22년 만에 최초로 80년 6월 총선이 실시되고, 7월 단원제 국민의회가 구성되었다. 정원은 250명이고, 임기는 4년이다.

북부의 쿠르드족 자치구도 같은해 9월 총선을 실시하고 50명의 의원을 선출하였다. 후세인 정부는 이란의 팔레비왕조가 붕괴되자 혼란을 틈타 80년 9월 17일 국경을 침입하였는데, 호메이니를 중심으로 하는 이란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쳐 8년간 전쟁을 벌이다가 88년 8월 20일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의 정전결의안을 수락하고 휴전하였다.

89년 4월 제3차 총선에서 집권 바트당은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다. 이것은 계속된 전쟁과 혼란에도 불구하고 후세인의 권력이 강화되었음을 의미한다. 90년 7월 18일 혁명평의회가 마련한 헌법수정안이 의회에서 통과되었는데, 이 신헌법안은 ① 대통령은 국민의 직접선거로 선출하고, ② 임기는 8년이며 연속 출마할 수 있고, ③ 혁명평의회를 해산하고 자문평의회를 설치하며, ④ 자문평의회 의원 50명 중 25명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나머지는 선거를 통해 선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신헌법의 시행 시기는 미정이다. 또한 의회는 후세인을 종신 대통령으로 한다는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이라크는 90년 8월 2일 쿠웨이트를 전격 침공하여 점령하고 자국의 19번째 주(州)로 편입하였다. 이에 91년 1월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다국적군이 대대적 공습과 지상전을 전개해 이라크는 막대한 피해를 입은 채 쿠웨이트에서 철수하였다.

전쟁 후유증으로 후세인 정부가 어려움에 처한 가운데 북부의 쿠르드족 자치구와 남부의 시아파 반군은 분리독립 움직임을 보였다. 92년 5월 쿠르드족 자치구는 이라크와 별도의 정부를 출범시키기 위한 총선을 실시하였는데 선거 결과 쿠르드민주당(DPK)과 쿠르드애국동맹(PUK)이 각각 50석씩 차지하였다.

후세인은 쿠르드족에 대한 압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남부 시아파 반군에 대한 전면적 소탕작전을 개시하였다.

이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진영은 92년 8월 북위 32도 이남의 이라크 영공을 비행금지구역으로 선포하고 93년 1월 대대적 공습을 감행하였다.

그러나 미국과 서방진영의 계속된 위협과 공격에도 불구하고 후세인 정부의 권력기반은 강화되고 있으며 이라크인들의 반미 ·반서방 감정도 더욱 높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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