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3-26 경향신문
이라크의 경제난으로 1994년 주한이라크 대사관이 폐쇄된 후 단절된 양국의 교류가 이라크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지닌 한 사업가 부자(父子)에 의해 이어지고 있다.
주인공은 한온그룹 총재를 지낸 고 신정일씨와 아들 세원씨(31).
세원씨는 99년 4월 부친이 작고하면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이라크와의 끈’을 잇기 위해 대를 이어 명예영사직을 수행하고 있다.
기업체를 운영하던 세원씨의 부친은 사업다각화 차원에서 90년대 초 이라크를 방문했다.
이라크 석유개발권이 자원빈국인 우리나라에 큰 도움이 된다고 판단, 유학중에 사귄 이라크 등 아랍권 유력인사를 총동원해 이라크 정부와 접촉을 시도했다.
91년 걸프전 발발로 석유개발사업권 교섭은 무기 연기됐지만 이를 계기로 이라크에 대한 그의 관심과 사랑은 더욱 깊어졌다.
걸프전으로 이라크는 쑥대밭이 됐고 수많은 인명도 스러졌다. 또 걸프전 이후 유엔이 취한 경제봉쇄정책으로 생필품 등의 이라크 반입이 금지됐다. 의약품이 없어 숨지는 아이들이 월 2만명에 달한다는 소식을 들은 신정일씨는 93년부터 2년간 자신이 운영하는 의료재단을 통해 의약품을 바그다드로 공수했다.
또 자비를 들여 국내 방송사들과 함께 이라크의 참상을 알리는 영상물을 제작하는 한편 해외 유명인사들과 접촉, 이라크에 대한 경제봉쇄를 해제해 달라는 청원을 하기 위해 백악관과 유엔의 각국 대사를 찾기도 했다.
이런 ‘이라크 구하기’ 노력이 이라크 정부에 알려지면서 신정일씨는 96년 후세인 대통령으로부터 주한 이라크 명예영사로 임명됐다. 이듬해에는 세계 7대 석유매장광구 중 하나에 대한 독점개발사업권을 따냈다.
아버지가 작고한 뒤 99년 명예영사가 된 세원씨는 지난 20일 미국이 이라크 침공에 나서자 반전캠페인을 펼치기 위해 이라크로 가려 했지만 여의치 못했다.
그는 “이라크 정부 관계자가 북한 핵보유설로 미묘한 시점에 영사 신분으로 반전캠페인에 나서면 미국이 좋지 않게 볼 수 있다며 자제해달라고 당부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라크 정부 고위관계자가 석유개발사업권을 줬는데도 한국이 참전키로 한 데 대해 유감스럽다는 뜻을 사적인 채널로 전달해 왔다고 전했다.
신명예영사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세계질서는 설득과 대화가 아니라 힘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좋지 않은 선례가 남게 됐다”면서 “유엔의 승인없이 전세계의 반전여론을 무시한 채 침공을 하고, 강대국이 이에 대해 중재하지도 않는다면 한반도도 이라크와 유사한 상황에 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6.25전쟁을 겪은 우리는 이라크 국민들이 겪고 있는 전쟁의 비극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이라크전이 종료되면 이라크 현지로 가 인터넷을 통해 참혹한 전후실상을 알리고 복구작업에도 적극 참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세원씨는 이라크 전역에 정보통신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을 하고 있다. 전쟁으로 인해 현재 사업은 중단됐지만 국내 유명 정보통신업체와 함께 이라크의 정보통신 인프라 구축을 위한 10개년 계획을 수립, 진행중이다.